최근 서울 중구 장충동에 있는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로 전국의 브리지 게임 선수 및 동호인들이 집결했다. 호텔동 1층 크리스탈볼룸에서 열린 ‘제7회 반얀트리컵 브리지 토너먼트 대회’ 참가를 위해서였다. 한국브리지협회가 주최한 이 대회는 약 150명이 참가해 두뇌게임 ‘끝판왕’을 가렸다.
◆52장 카드의 심리게임… 워렌 버핏의 ‘최애’ 취미
브리지 게임은 4명이 둘씩 팀을 이뤄 52장의 카드를 가지고 펼치는 심리싸움이다. 4인 테이블에서 서로 마주보는 사람이 한 팀이 되는데 말을 하거나 몸짓, 눈짓 등으로 의사소통을 나누면 반칙이다. 오로지 카드로만 이야기 하며 상대팀보다 더 높은 점수를 따야한다. 침묵 속에 본인의 카드를 확인하고 같은 편의 카드, 그리고 상대팀의 카드를 예측하면서 때론 상대를 속이기 위한 트릭도 펼쳐야 한다.
아직 국내에선 생소한 편이지만 영미권에선 약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대중 게임이며 워렌 버핏, 빌 게이츠, 클린트 이스트우드 등 유명인들이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국제대회도 많이 열린다.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이기도 하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부터 메달의 주인공을 가리는 ‘스포츠’로 지위가 격상됐다. 당연히 한국도 성인 및 유소년 국가대표가 존재하고 일부는 이날 반얀트리컵에도 참가했다.
◆여기 독서실이야? 적막 속에 번뜩이는 ‘매의 눈’
브리지의 한 라운드는 1시간 동안 진행된다. 경기가 시작되면 경기장은 쥐 죽은 듯 조용해진다. 앞서 말한 것처럼 브리지는 게임 중 말을 하면 반칙이기 때문이다. 이날 대회가 열린 반얀트리 크리스탈볼룸도 그랬다. 식전행사가 진행될 때만 해도 시끌벅적하던 장내가 경기 시작을 알리자마자 마치 독서실처럼 정적이 흘렀다. 온열기구가 돌아가면서 내는 ‘윙윙’ 소리만이 두드러졌다. 그 소리만 계속 듣고 있으니 마치 스터디카페의 ‘백색소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게임이 펼쳐지는 각각 테이블을 돌아보니 참가자들의 입은 닫혔지만 눈은 마치 매의 그것처럼 날카로웠다. 고도로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육안으로도 느껴졌다. 이들은 심판 역할을 하는 디렉터를 부를 때도 대부분 손을 드는 것으로 말을 대신했다. 폐를 끼치는 것 같아 사진 촬영이 꺼려질 정도. 이렇다보니 라운드가 끝나고 주어지는 약 15분 간의 휴식시간에 참가자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웃기도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색하게 느껴졌다.
◆소음 없이 너른 공간… 반얀트리는 브리지 ‘안성맞춤’
이날 선수로도 참가한 김혜영 한국브리지협회장은 브리지는 말 대신 카드로 의사소통을 하는 게임인 만큼 경기장도 소음이 없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반얀트리는 최적의 장소였다. 남산 자락에 있어 특유의 고즈넉함이 매력 포인트로 꼽히는 반얀트리의 객실처럼 이날 대회가 열린 크리스탈볼룸도 소음은 딴 나라 얘기였다. 한 참가자는 “바닥 전체에 카펫이 깔려있어 의자소리와 발소리가 들리지 않아 집중하기 좋았다”며 엄지를 세웠다.
490㎡(약 150평) 규모의 탁 트인 공간은 이날 참가한 150명 브리지 선수와 동호인들이 동시에 게임을 펼치기에 충분했다. 반얀트리 관계자는 “최대 250명까지 수용 가능한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그 덕분에 약 40개 게임 테이블 외 참가자 가족, 취재진, 귀빈을 위한 별도 테이블이 마련됐음에도 충분히 넉넉했다. 한 참가자는 “대회 참가를 위해 전국을 다녔는데 여기만큼 넓은 곳은 처음이다. 대규모 인원이 다 같이 게임을 할 수 있으니 좋다”고 평가했다.
◆7년째 이어진 동행… “디테일 살아있네”
또 다른 참가자는 “라운드가 끝나고 휴식시간에 누적 점수와 다음 대진을 확인할 때 대형 모니터가 2개 있어서 좋았다. 또 토너먼트 대회의 경우 아침부터 저녁까지 경기가 열리기 때문에 먹거리도 중요한데 잘 준비됐더라. 디테일이 뛰어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유명 5성급 호텔에서 대회가 열린 만큼 이곳에서 숙박을 한 참가자들도 있었다.
이처럼 세심한 준비가 가능했던 것은 반얀트리와 브리지의 동행이 어느덧 7년째이기 때문이다. 2018년부터 서울시 브리지 대회 반얀트리컵을 열었고 올해는 전국 대회로 규모를 키웠다.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반얀트리 더 클럽’ 멤버십 회원들을 상대로 브리지 클래스를 진행해왔다. 브리지 선수로부터 게임을 배우고 회원끼리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지원한 것. 실제 이날 대회 참가인의 절반 이상이 반얀트리 클럽 회원이었다. 반얀트리 관계자는 “우리는 회원 간 네트워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브리지는 남녀노소 즐기는 게임이라 멤버십 클래스로 딱”이라고 말했다.
◆“반얀트리컵이 매년 새해 복 기원하는 자리 되길”
김혜영 협회장은 앞으로도 반얀트리컵이 대규모 전국대회로 계속 이어지길 기원했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며느리이기도 한 그는 “아버님께서 살아계실 적 매년 1월 각국 대사관 가족 등을 초청해서 파티를 열며 새해 복을 기원하곤 했다”며 “반얀트리컵도 그런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매년 초 전국의 브리지 가족이 반얀트리에 모여 게임을 하면서 안부를 나누고 친분을 돈독히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소망을 피력했다.
이날 대회는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9시간의 열전을 마치고 시상식, 저녁식사, 치어리더 공연까지 가진 뒤 오후 8시에 마무리 됐다. 근 12시간 동안 진행된 행사를 마친 뒤 반얀트리 관계자는 “대회가 치러지는 걸 보면서 브리지와 반얀트리 사이 공통점이 존재한다고 느꼈다”며 “브리지 게임은 전략적 판단과 유기적인 협력이 승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인데, 반얀트리도 비슷하다.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오피니언 리더를 중심으로 한국 최초의 선진형 클럽 서비스를 제공하는 반얀트리는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네트워크를 다지며 교류하는 것을 중시한다”고 말했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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