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상에서 ‘강한 자만이 살아남던 90년대 방송’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본 적이 있다. 공개 연애를 하던 연예계 커플이 결별해 그중 한 명이 출연한 방송이었다. MC가 대놓고 “(결별이) 사실이냐”냐고 묻고 출연자는 고개를 숙이며 한숨을 쉰다. 당시의 충격적인 문화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2024년의 연예계는 어떨까. 열애설이 난다 해도 ‘사생활을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소속사의 입장이 흔해졌다. 공개 연애를 하면 결별 후에도 꼬리표처럼 ‘하트’가 따라붙기에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다. 결혼을 발표하면 웨딩마치를 울리는 부부를 향한 기대와 응원도 쏟아진다. 알콩달콩한 부부의 일상이 공개되는 프로그램도 있고, 2세가 출연하는 육아 예능도 많아지면서 ‘랜선 이모·삼촌’의 사랑도 넘쳐난다.
반면 금이 간 부부의 사생활을 공개하는 관찰 프로그램도 지나치게 많아졌다. 일반인부터 유명 연예인 부부에 이르기까지 부부관계에 빨간불이 켜진 출연자들의 다툼이 적나라하게 공개된다. 대화와 다툼의 수위도 점점 자극적으로 진화한다. 출연을 결심하기까지의 심경을 가늠할 수는 없으나 ‘이럴 거면 대체 왜 출연했나’ 싶을 정도로 답답한 모습이 대다수다. 방송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온갖 자극적인 댓글이 온라인을 뒤덮는다. 제목만 봐도 비난받아 마땅한 상황들이다.
그중 TV조선 ‘이제 혼자다’는 최근 이혼 부부 폭로전의 중심에 섰다. 기획의도는 ‘다시 혼자가 된 사람들의 세상 적응기’지만 박지윤과 이혼 소송 중인 최동석은 아직 혼자가 되지 않은 채 방송에 출연해 치열한 폭로전 끝에 결국 하차를 결정했다. 라붐 출신 율희는 출연 이후 개인 유튜브 채널에서 전남편 최민환의 사생활을 폭로해 파장을 몰고 왔다. 전 남편 최병길 PD와 SNS 폭로전을 이어가고 있는 방송인 서유리의 출연도 예고된 상황이다.
현생을 살아가기도 바쁜 현대인들에게 사실 연예인들의 삶은 ‘안물안궁’이다. 하지만 제작진은 ‘최초 공개’, ‘심경 고백’, ‘충격’, ‘파격’ 등의 단어로 시청자의 관심을 구한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현실은 시청자의 구미를 당긴다. 제작진이 부부 관찰 예능에 열과 성을 쏟을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와 같다.
미디어의 파급력은 크다. 부부의 사생활을 옆에서 목격할 수 없는 대중은 여느 관찰 프로그램 제작진의 의도에 따라 그들을 바라보게 된다. 사건이 부풀려지고 오해받도록 꾸며진다 한들 시청자가 알아챌 수도 없다. 그렇다고 제작진 탓을 하기엔, 출연료를 받고 얼굴을 비치는 출연자들의 몫도 있다.
다만 그로 인한 후폭풍이 SNS로 옮겨져 폭로전으로 치닫는다는 게 문제다. 당사자의 억울함은 백번 이해할 수 있다. 반면 필요에 따른 선택적 해명과 폭로로 인한 대중의 피로감은 아무도 해소해주지 않는다. 부모의 폭로전에 고스란히 노출된 자녀들을 향한 배려 또한 없다.
한쪽에서는 사생활 보호를 촉구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생활 공개로 생활을 영위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대중의 관심 없이는 직업을 이어갈 수 없다는 점이다. 변심하는 여론은 누구의 탓일까. 과연 ‘SNS 폭로전’이라는 단어가 사라지는 날이 올기는 할까. 영원히 끝나지 않을 논쟁이다.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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